대전 계족산은 한자 그대로 닭의 다리라는 뜻으로
산의 모양이 닭다리를 닮아서 계족산이라고 한다. 능선에서 능선으로 뻗어나간 모습이
닭발처럼 보인다.이산의 우측 끝 가양공원부터 장동 삼림욕장까지 넓은 산책로가 있어서 자전거를
타거나 산책하는 시민들이 많다.산책로로 구성되어 있어 데이트 코스로도 좋은 곳이다.
황토길길이 만들어져 맨발로 산책해도 좋은 길이다. 쉼터 앞 정자에서
보이는 계단은산성으로 가는 길이다. 여기서부터는 산책로가
아닌 등산로이다. 험하지 않아서 많은 힘 들이지 않아도
등산이 가능하여 가족끼리의 등산코스로도 좋은 곳이다.
옥류각
조선 효종 때 대사헌, 이조판서, 병조판서를 지낸 동춘당 송준길(1606∼1672)선생의 별당이다.
늘 봄과 같다는 뜻의 동춘당은 그의 호를 따서 지은 것으로 이곳에 걸린 현판은 송준길 선생이 돌아가신 6년 후
숙종 4년(1678)에 우암 송시열이 쓴 것이다.
조선시대 별당 건축의 한 유형으로, 구조는 비교적 간소하고 규모도 크지 않다.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이며, 평면으로는 총 6칸 중 오른쪽 4칸은 대청마루이고 왼쪽 2칸은 온돌방이다.
대청의 앞면·옆면·뒷면에는 쪽마루를 내었고 들어열개문을 달아 문을 모두 들어 열면 내부공간과 외부공간의 차별없이
자연과의 조화를 이룬다. 또한 대청과 온돌방 사이의 문도 들어 열 수 있게 하여 필요시에는 대청과 온돌방의
구분없이 별당채 전체를 하나의 큰 공간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건물의 받침은 4각형의
키가 높은 돌을 사용했는데, 조선 후기의 주택건물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양식이다.
동춘당은 굴뚝을 따로 세워 달지 않은 것이 특징인데, 왼쪽 온돌방 아래 초석과 같은 높이로
연기 구멍을 뚫어 놓아 유학자의 은둔적 사고를 잘 표현하고 있다.
즉, 따뜻한 온돌방에서 편히 쉬는 것도 부덕하게 여겼기 때문에 굴뚝을 보이지 않게
함으로써 유학적 덕목을 유지하려 했던 것이다.
계족산성'
대전시 장동 계족산 420. 정상에서 능선을 따라 축조된 테뫼식 산성이다.
이 산성은 백제가 쌓은 것으로 알려져 왔으나, 1998∼99년 발굴을 통해 신라에서 쌓은 것으로 밝혀졌다.
산성의 높이 7-10 가량 되고 동·서·남쪽에 문터를 만들었다.
성 안에서 삼국시대에 만든 큰 우물터가 발견되었고, 성내 건물터에서는
고려시대 기와편과 조선시대 자기편이 발견되어 조선시대까지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성쌓기 방법은 보은에 있는 신라 삼년산성(사적 제235호)과 같은 방식으로 쌓았다는
것이 발굴을 통해 밝혀졌고, 출토된 토기 중 가장 오래된 것이 6세기 중·후반의 신라토기임이 밝혀졌다.
이후에 나온 토기 형태도 백제계는 소수이며 다수의 신라계 토기가 보여, 한때 백제가
점령하긴 했지만 신라에 의해 만들어진 산성으로 조사되었다.
계족산성은 새로운 발굴 성과에 의해 신라가 쌓은 것으로
나타났으나 아직도 논란이 있으며, 6세기 중·후반 신라나 백제에 의해 만들어진
산성으로, 당시 대전지방이 가진 전략적 중요성을 보여준다.
비래사'
대전광역시 대덕구 지래동 468번지에 위치한 비래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 06교구 말사입니다.
계족산 줄기의 중간부분에 위치한 자그마한 조선시대의 절로 약수터와 옥류각이 있는 사찰입니다.
비래사 경내 입구에 위치하고 있는 옥류각(玉溜閣)은 동춘당 송준길(同春堂 宋浚吉)과 그 문인들이
인조(仁祖)17년(1639)에 산수가 수려한 이곳에 2층의 누각을 짓고 학문 연마와 함께 강학(講學)하던 유서 깊은 곳입니다.
각(閣)의 명칭은 계곡에서 흐르는 윤수(潤水)가 사계절 옥(玉) 같이 흘러 내려오고 있다하여
옥류'라 이름 붙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비래사 경내 수령-210년 수종-향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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