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외산행앨범/백두산

룡정 대성중학교'20160308

Spring-춘근 2016. 3. 8. 10:00


윤동주가 다녔던 용정중학교(구 대성중학교)


연길에서 멀지 않은 거리에 위치한 용정시에 간다면 꼭 들려야 하는 곳이 용정중학교. 일송정 해란강이다. 

우리 민족의 역사와 관련이 깊은 곳들이 관광지 아닌 관광지로 중요한 의미로 자리하고 있으며 용정지역은 과거 일제시대에 

독립운동이 활발히 펼쳐진 곳이라고 한다. 용정중학교는 과거 대성중학교였으며, 민족 시인인 윤동주 시인이 공부한 중학교로

잘 알려져 있다. 지금은 대성중학교 시절때의 작은 건물은 보수하여 전시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박물관 입구에는 별의 시인 윤동주 시비가 있으며 전시관에는 용정중학교의 역사와 일제시대에 항일운동을 펼친

인물 등의 전시관이 있으며 윤동주 시인의 교실이 복원이 되어 있다. 2층에는 독립운동가들의 활약상 및 대성중학교 역사 등을

전시해 놓았다. 1층에는 기념품 상점이 있으며 수익금의 일부는 대성중학교 박물관 및 용정중학교 학생들을 위해 쓰여진다고 한다.전시관에는 안내원(해설가)가 상주하여 용정중학교, 윤동주 시인외 용정시와 관련된 독립운동가 들의 설명을 들을수 있다.










여기가 윤동주가 실제 수업을 받았던 교실입니다. 







윤동주 시인의 생가:용정에 있는 윤동주 생가 입구에는 중국 조선족 애국 시인 윤동주'라는 글귀가 쓰여있다.

윤동주는 중국 시인이 아니니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국내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연변(옌볜)조선족자치주 정부는

1900년 용정에 지어졌던 윤동주 생가를 2012년 새로 복원하고 중요 문화재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

복원된 생가와 마을 우물 위치는 원래터와는 조금 차이가 있다고 한다.







윤동주 시인(1917∼1945)의 타계 70주기를 맞아 일본 지식인들이 

그가 숨진 일본 규슈(九州) 후쿠오카(福岡) 형무소에 시비(詩碑)를 세우자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 시비는 일본의 역사적 과오를 뉘우치고 반성하자는 취지로 세워진다는 점에서 주목한다.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숨진

 윤동주의 장례가 1945년 3월6일 뒤늦게 고향 용정에서 치러졌습니다.






◎ 윤동주 무덤 앞에서

이제는 조국이 울어야 할 때다
어제는 조국을 위하여
한 시인이 눈물을 흘렸으므로
이제는 한 시인을 위하여
조국의 마른 잎새들이 울어야 할 때다

이제는 조국이 목숨을 버려야 할 때다
어제는 조국을 위하여
한 시인이 목숨을 버렸으므로
이제는 한 젊은 시인을 위하여
조국의 하늘과 바람과 별들이
목숨을 버려야 할 때다

죽어서 사는 길을 홀로 걸어간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웠던 사나이
무덤조차 한 점 부끄럼 없는
죽어가는 모든 것을 사랑했던 사나이

오늘은 북간도 찬바람 결에 서걱이다가
잠시 마른 풀잎으로 누웠다 일어나느니
저 푸른 겨울하늘 아래
한 송이 무덤으로 피어난 아름다움을 위하여
한 줄기 해란강은 말없이 흐른다
(정호승·시인, 1950-)





별의시인' 윤동주의 동상이 모교 용정중학교 교정에 제막되었다.

시인의 출생년도 사망년도를 표시하는 (1917-1945) 가 새겨져 있으며 1992년에 윤동주시비가

용정중학교 옆 대성중학교 옛터에 건립된후 22년만에 동상이 세워졌다.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있는 룡정시 룡정중학교에서는 항일전쟁승리 70주년과 6개 학교 합병 70주년(2016년 9월) 맞으면서 대성중학전시관 1층의 80평방메터 면적의 창고를 털고 《항일렬사기념관》을 앉히기로 결정하였다.




대성중학교 옆 용정중학교다.






연변의 해란강은 반만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겨레의 성산-장백산이동의 베개봉기슭에서 발원하여 

청산리계곡과 화룡분지 평강벌을 감돌아서 용정시를 한품에 안은 풍요로운 땅 세전이벌에 흘러든다. 강의 길이는 145km 이다.

그 옛날 이 강을 사이두고 비암산과 주암산기슭에는 일잘하는 해라는 힘센 총각과 손재주가 뛰여난 란이라는 예쁜 처녀가 

삼두륙비의 악아를 물리치고 백성들을 잘살게 한 아름다운 전설이 깃들어있는 강이다.


우리 조상들이 이 고장을 찾아와 용드레우물을 파고 벼농사를 짓기 시작한것은 19세기 후반기부터였다. 

가난한 농민과 애국지사들이 이곳에 모여 새 학당을 꾸리고 민족계몽과 반일 운동이 일어나자 룡정은 일약 독립운동의

중심으로 부상하였다. 1920년 10월에 있은 청산리전투도 바로 이곳 해란강상류의 백운평마을에서 벌어진것이다. 

윤해영 작사, 조두남 작곡으로 알려지고있는 “선구자의 노래”가 바로 이곳을 배경으로 창작한것이다.






현재의 소나무가 있던 자리에는 1938년까지만 해도 수령 수백년이 넘는 아름드리 소나무가 있었다. 

원조 소나무는 마치 바위우에 걸터앉은 호랑이모습을 하고있었으며 룡정의 조선인들은 이 일송정을 룡정을 지키는 

당산나무로 여기며 신성시했다. 또 룡정 일대에서 활약하던 독립운동가들은 이곳을 비밀집회장소로 활용하기도 했다. 

독립운동을 탄압하던 일제가 민족정기가 깃든 룡정 남산 당산나무의 존재를 곱게 봐줄리 만무했다.

일송정을 눈에 든 가시처럼 여기던 일본군은 이 소나무를 과녁삼아 사격연습을 하거나 소나무껍질을 벗겨내 구멍을 뚫어 

대못을 박는 등 모진 짓거리를 했다. 결국 일송정은 일본군에 의해 말라죽고말았다.


1991년 우리나라 한 단체가 룡정시정부의 협력으로 정자를 세우고 소나무 한그루를 다시 심었다. 

그러나 이 소나무도 오래가지 못하고 고사했다.  소나무가 죽으면 다시 심고 하기를 8번, 드디여 2003년 3월 9번째로 심은

소나무가 지금까지 살아 버티고있는것이다.한국인들이 즐겨부르는 노래 "선구자"에 한줄의 가사로 적혀있는 일송정

 푸른 하늘에 고독하게 서있는 소나무와 정자는 오늘도 후대들에게 수많은 력사의 이야기들을 말없이 전해주고있다.









청산리 전투는 이 일대에서 한국 독립운동사에서 가장 빛나는 독립전쟁으로

1920년 10월 21일 백운평 전투를 시작으로 26일까지 천수평·어랑촌·완루구·고동하 등지에서 

10여 차례의 크고작은 전투를 벌여 우리 독립군이 모두 승리한 참으로 통쾌한 전쟁이었다.







  관지촌에서 선봉령(해발 1.400m)으로 오르는 고갯길이다. 

















이도백하 산강호텔은 이도백하 기차역과 마주하여 있으며 2008년에 오픈한 호텔이다.

대,중,소 회의실과 오락시설들을 겸비하고 있으며 호텔 뒤쪽에 위치한 바깥라운지에서 송아지바베큐,

 통돼지 바베큐 등 야외만찬도 즐기실수있다.